꼬꼬무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꼬꼬무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꼬꼬무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재방송 보러가기 | 검은 돌고래와 불청객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38회 7월 28일 게스트 이기우 홍석천 선미 SBS 온에어 실시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꼬꼬무 38회 <검은 돌고래와 불청객>편은 오는 7월 28일 목요일 밤 10시 30분에 방송됩니다.

꼬꼬무 재방송 홈페이지 38회 검은 돌고래와 불청객

꼬꼬무 38회 검은 돌고래와 불청객 편에서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대해서 이야기 해봅니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북한 인민무력성 정찰국 소속 상어급 잠수함이 강원도 강릉시 동해안 일대에 침투하여 정찰 공작 활동을 벌이고 복귀를 시도하던 중 해상 복귀가 불가능해지자 육로를 통한 복귀를 위해 상륙하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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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잠수함은 1996년 9월 14일 오전5시 부대가 있는 함경남도 락원군에서 정찰국장의 환송을 받으며 출발했습니다.

휴전선 경계 5마일 정도까지는 별 문제 없었고 이 지점부터 수중 공기관과 잠망경을 내린채 해저 60~70m 깊이로 침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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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강릉에서 5마일 정도 떨어진 거리에선 잠수함을 부상시켜 잠망경으로 위치를 확인하며 접근했습니다.

15일엔 해안 3~400m 거리에서 잠수함을 바닥에 가라앉혀 정찰조를 상륙시켰고 이후 물속에서 대기하다 17일 정찰조를 태우기 위해 들어가던 중 그만 좌초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 당시 유일하게 생포된 무장공비였던 이광수는 “대부분 잠수정이 후진하다 암초에 걸린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앞으로 들어 왔으나 파도가 너무 쳐서 옆으로 밀리면서 암초에 걸렸고 프로펠러가 망가지면서 좌초한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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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찰만 하고 임무 마쳐서 모두 복귀하려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졌습니다. 후에 침투 목표가 대통령 암살이라는 것이 공개됐기 때문입니다.

저격조만 상륙하고 승조원과 잠수함은 복귀하려다 실패하자 전원 상륙하였습니다.

안기부 조사에서 이광수는 10월 7일 김영삼 대통령이 춘천에서 개막된 전국체전 개막식에 참석할 경우 저격할 목적이었음을 진술했다고 합니다.

정부는 무장 공비 침투 목적을 사실대로 공개할 경우 국내 경제가 위축되고 북한과의 대화 창구가 완전 폐쇄될 가능성이 있어 한동안 보류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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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계획은 1996년 10월 춘천에서 전국체전이 개최된다는 첩보를 입수한 북한이 강릉에 저격조만 상륙시키고 승조원은 복귀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저격조는 민간인으로 변장한 뒤 낚시 가방에 불법복제판 M16 소총을 넣고 낚시 동호회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강릉에서 춘천까지 도보로 이동한 후 이 전국체전 개막식에서 연설을 하기로 예정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을 저격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탑승한 잠수함이 강릉 앞바다에서 좌초하는 바람에 복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 승조원들도 덩달아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결국 인적이 드문 곳에서 저격조가 승조원 중 저격조 역할이 불가능한 인원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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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춘 중좌, 정영구 중좌, 류림 소좌, 원흥천 대위, 박태홍 대위 이 5명은 원래는 승조원이지만 저격조 역할도 가능했기 때문에 정리(처형)되지 않고 저격조로 역할이 전환되었다고 합니다.

1996년 9월 18일,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상에서 68사단 초병과 택시기사 이진규가 50m 해상에서 좌초한 북한 잠수함을 발견하면서 무장공비소탕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1월 5일 인제군 연화동에서 특전사 장선용 상사가 마지막으로 잔존한 정찰조 2명을 사살함으로써 작전을 최종 종결시킬 때까지 총 49일간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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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7월 28일 방송

침투 무장공비는 총 26명이라는 설과 25명이라는 설이 분분했으나 북한에서 발표한 선전물에 전사자로 분류된 것이 확인되어 26명이 맞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들 중 총 13명이 국군에 의해 사살됐고, 11명이 함께 침투한 공비에 의해 처형됐으며, 1명(이광수)이 생포됐습니다.

그리고 1명은 행방은 커녕 존재 자체도 불확실하지만 일단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아군 피해는 전사 11명(장교 2, 부사관 2, 병 7),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전사 1명(68사단 홍동진 대위), 부상 27명에 민간인 4명, 경찰 1명 사망, 예비군 사망 1명으로 집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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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인명피해가 나는 등 도발의 증거가 명백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일어난 뒤인 9월 23일, 북한측은 처음으로 인민무력부 담화를 통해 “훈련 중 기관 고장을 일으켜 표류하다 좌초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곳은 그 이전까지 북한이 간첩사 건 자체를 부정한 것과는 아예 다른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10월 2일 판문점 군사정전위 비서장 접촉에서 박임수 대좌는 “백배 천배 보복하겠다.”면서 적반하장식으로 남한을 협박했습니다.

이에 남한도 격앙하여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펴는 한편, 언론에선 요인 암살, 시설 파괴 등의 목적을 띠고 남파된 무장공비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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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38회 게스트 이기우 홍석천 선미

이렇게 남북 간에 극한적 대결상황에 돌입하자 미국 측은 “당사자들이 자제해 주길 바란다”며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 태도 때문인지 미국은 사전에 첩보위성 등을 통해 북한 잠수함 표류를 알고 있었다는 추정을 낳기도 했으며 이로 미루어 보아 미국도 해당 사건이 의도적 도발이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북한 잠수정 침투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첩보를 한국에게 제공하지 않고 지켜만 봤습니다.

이것과 여러 정보를 한국 측에 넘긴 이유로 미 해군 정보분석관 로버트 김은 감옥에 간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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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미국 정부는 한국에 대해서는 강경책을 누그러뜨리는 한편, 북에 대해서는 공식적 사과는 아니더라도 ‘유감’이라도 밝히도록 종용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은 12월 29일 조선중앙통신과 평양방송을 통해 영어와 한국어로 ‘유감’이라는 표현을 하며 사과를 했는데, 재야사학자 임영태에 따르면 이 메세지는 한국보다 미국을 향한 간접적 메세지라고 보았습니다.

어쨌든 이 사건은 김일성이 직접 사과한 김신조 일당 사건과 함께 북한 측의 몇 안 되는 대남도발 사과의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이 날 방송되는 38회에서는 이기우, 홍석천, 선미가 게스트로 출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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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38회 주제는?

꼬꼬무 38회 검은 돌고래와 불청객 편에서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대해서 이야기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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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38회 다시보는 방법은?

꼬꼬무 38회 뿐만 아니라 SBS의 다른 방송을 다시 보는 방법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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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38회 게스트는?

이 날 방송되는 38회에서는 이기우, 홍석천, 선미가 게스트로 출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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