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김복연 할머니 부역사건
꼬꼬무 김복연 할머니 부역사건 재방송 보러가기 | 두 번의 기적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42회 8월 25일 게스트 안지영 오나라 온주완 SBS 온에어 실시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꼬꼬무 42회 <두 번의 기적 –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편은 오는 8월 25일 목요일 밤 10시 30분에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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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재방송 홈페이지 42회 두 번의 기적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꼬꼬무 42회 두 번의 기적 –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편에서는 김복연 할머니 부역사건에 대해서 이야기 해봅니다.
김복연 할머니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부역했다는 누명을 쓰고 10년 넘게 옥살이를 하였다 이후 아들 전씨의 노력으로 인해 억울함을 푼 분입니다.
김복연 할머니의 아들은 1994년부터 2017년 까지 총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노력을 하며 2번의 재심 신청을 하였고 결국 무죄를 받아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김복연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무죄판결을 보지 못하고 2010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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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서울이 수복된 뒤 피난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전씨 가족을 맞이한 건 악몽이었습니다.
고 김복연 할머니(이하 김 할머니)는 서울 종로구 원남동 거리에서 급작스레 검거됐는데 이 당시 ‘범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모자가 함께 구타를 당한 뒤에 사직공원으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5세였던 전씨와 김 할머니가 영문도 모른 채 붙잡혀 간 건 1950년 7월 북한이 서울을 점령했을 당시 인민군에게 도움을 줬다는 이유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이승만 대통령 돌아오시라’란 삐라를 제작한 사람들을 밀고했다는 것입니다.
조사는 가혹하게 진행됐으며 김 할머니는 혐의를 계속 부인했지만 경찰들의 고문행위가 이어졌습니다.
그 상황을 본 전씨가 울음을 터뜨리자 경찰은 아무런 동의 없이 전쟁고아 수용소로 전씨를 보내벼렸습니다.
당시 경찰이 마음대로 맹철수라는 이름을 지어줬으며 전씨는 오랜 기간 동안 이 이름을 사용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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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머니에 대한 조사와 기소 그리고 판결까지도 속전속결로 이뤄졌습니다. 검사는 1950년 11월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체포부터 기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9일이었는데 기소된 김 할머니는 한 달도 안 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옥살이 중 병세로 인해 풀려나고 다시 붙잡히길 반복하다가 1973년 15년으로 최종 감형되면서 만기 출소했습니다.
이후 전쟁고아 수용소로 보내졌던 전씨가 어머니 소식을 알게 된 건 방송과 신문 등 언론을 통해 김 할머니의 사연이 알려지게 된 1993년 7월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김 할머니는 모진 고문과 조사를 받아 아들과 헤어진 지 43년 만에 극적으로 아들과 상봉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전씨는 당시 김 할머니에게 적용된 혐의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1950년 7월 당시 인민군에 쫓기던 김 할머니가 국군 일병 김모씨를 숨겨주고 옷을 줬는데 이를 한 집에 살던 세입자들이 인민군에 신고했고 할머니 모자는 피난을 떠나게 됐습니다.
이후 세입자들은 할머니가 서울로 돌아오자 허위 사실이 들통 날까 두려워 김 할머니를 부역자로 누명을 씌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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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는 이후 사건을 바로 잡기 위해 정부합동민원실과 서울지방검찰청,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을 돌며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가자 여러 기관 등을 돌아 다니면서 증거를 차곡차곡 모아 재심 신청을 하였습니다. 이 당시 재심청구를 하면서 대통령민정비서실에 청원서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94년 청구한 첫 번째 재심은 기각됐습니다. 이후 1997년 당시 서울지검에 진정도 넣었지만,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그러던 2017년 전씨는 재차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경찰이 발부한 구속영장에 의해 구금, 고문 가혹행위와 직권남용죄 등 형법 위반 사항이 명백히 있다고 판단해서입니다.
결국 2년 여 심리 끝에 재심이 결정됐는데 1950년 당시 김 할머니를 체포한 경찰의 불법체포와 감금죄는 인정됐지만 고문 가혹행위와 직권남용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김 할머니는 2010년 4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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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42회 게스트 안지영 오나라 온주완
이후 2021년 5월 14일 재판부는 김 할머니에게 최종적으로 면소판결을 내렸습니다.
김 할머니에게 적용됐던 비상사태하의범죄처벌에관한특별조치령이 1960년 이미 폐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김 할머니가 국군 한 명을 구해줬다는 이유로 피난을 갔고 1950년 공소사실 당시 범행현장에 없었다는 진술은 구체적이고 신빙성이 있다며 이 사건이의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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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김 할머니를 부역자로 볼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들의 노력으로 김 할머니는 억울한 누명을 풀게 되었고 김 할머니의 남은 유족 등 4명은 각각 3억 9천 만원 가량의 형사보상금을 받았습니다.
이 날 방송되는 42회에서는 안지영, 오나라, 온주완이 게스트로 출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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